찌는 듯한 더위가 물러난 것 같아 다시 아차산을 올랐습니다.
숲길은 이미 초 가을의 정갈함이 묻어나고
이곳 저곳 묘지 주변엔 고추 잠자리와 함께 벌초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오늘은 만해 한용운 선생 묘까지 갔다 오기로 했습니다.
네이버에서 검색했더니 다음과 같은 짧은 정보를 보여줍니다
독립운동가 겸 승려, 시인. 일제시대 때 시집《님의 침묵(沈默)》을 출판하여 저항문학에 앞장섰고, 불교를 통한 청년운동을 강화하였다. 종래의 무능한 불교를 개혁하고 불교의 현실참여를 주장하였다. 주요 저서로 《조선불교유신론》 등이 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집앞 조그만 책방에서 가장 처음 사고 싶었던 책이 이분의 시집 "님의 침묵"이었습니다.
지금도 왜 내가 그책을 그토록 사고 싶어했는지 잘모르겠습니다.
입구에 서있는 비
올라가는 입구입니다. 올라가는 입구 옆에 잘 조경된 향나무가 무척 단아해 보입니다.
부부 묘입니다
연꽃과 목단인가 작약인가... 무척 화려하고 예쁜 꽃이었습니다.
그런데 부부 묘라니...
만해 한용운은 스님이 아니였던가?
스님이 왜 무덤속에 누워있는지....
참 궁금해 조사를 해보았습니다.
만해는 승려도 부인을 갖도록 허락해 달라고 조선총독부에 건백서를 냈다고 합니다. 그는 불교의 증흥을 위해 승려가 거지행각을 하여서는 안되고 보통사람처럼 결혼도하고 가정도 가져 안정된 바탕에서 승려생활을 함으로서 불교가 발전 할수 있다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조금 놀라운 사실입니다
사실 대처승은 일본의 스님들을 말하는 건줄 알았는데 만해가 그와 비슷한걸 주장했다는 건 굉장히 흥미로운 일이었습니다.
우리의 전통불교와 맞지 않은 주장이어서 많은 논란이 있었을 것 같고 지금도 논란거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또한 만해는 조선불교 유신론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육체를 타고나서 식욕이나 색욕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헛소리일 뿐이다. 억제할수록 더욱 심해질 뿐이고 오직 어지러운 상태에 이르지만 않으면 군자다. 그 욕망을 억지로 억누른다면 은근한 음행을 범하게 돼 풍속을 어지럽힐 가능성이 높다. 불교를 아내 삼아 평생 독신으로 살 영웅이 있다면 그를 존경하지만, 평범한 이의 수준에 맞추자면 관세음보살이 미인으로 몸을 나타내 음탕한 사나이를 제도했다는 고사대로 하나의 방편으로 수행자에게 결혼을 허해야 한다".
불교의 진흥을 위해서는 절이 산에서 내려와야 한다라고 주장했다고도 합니다.
또한 부국강병을 위해 조선의 인구가 1억명은 되어야한다고도 말하기도 하였답니다.
자료를 조사하는 동안 내게 있어 신격화 되어 있는 만해가 세속의 틀을쓰고 나타나는 것 같아 당황스러웠습니다.
백담사엘 갔을 땐 만해 한용운은 스님이었습니다.
내 기억속의 한용운은 시인이었고 이곳 망우리 묘지에서는 독립운동가로 누워 있습니다.
그것이 조금 혼란스럽습니다.
백담사와 망우리묘지 어디도 그 분의 삶을 제대로 보여 주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쉬움이 남습니다.
내게 이분은 시인으로서 이미지가 더 강합니다.
당연히 묘 주변에서 그분의 시를 찾았습니다.
하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내 청소년기의 로망이었던 분의 묘지에서 좋아했던 시를 볼수 없음이 무척 서운했습니다.
생가--달하 노피곰 도드샤(출처)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적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든 옛 맹서는 차디찬 티끌이 되야서 한숨의 미풍에 날어 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 하얐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백담사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의 파문을 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지리한 장마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예 탑 위의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근원은 알지도 못할 곳에서 나서 돌부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작은 시내는 굽이굽이 누구의 노래입니까?
연꽃 같은 발꿈치로 가이 없는 바다를 밟고, 옥 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해를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시입니까?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55세때 혼자살던 만해가 노처녀 유씨와 결혼하여 심우장을 짓고 살았는데, 이건물은 조선 총독부가 보이지 않도록 북향으로 지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편액은 평생 동지로 지낸 오세창이 쓴것이라 합니다.
만해에 대한 환상이 조금 깨어지기도 했지만,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되어 즐겁기도 합니다.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
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에게는 복종을 하고 싶어요.
복종하고 싶은 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도 달콤합니다.
그것이 나의 행복입니다.그러나,
당신이 나더러 다른 사람을 복종하라면
그것만은 복종할 수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복종하려면 당신에게
복종할 수 없는 까닭입니다.
파계을 행하고, 가정을 이루고.....그리고 문학인으로서 좌절과 시기도 ...
이제는 불교계에서 왜 만해에 대한 평가가 일반인에 비해 낮은지 이해가 됩니다.
또한 만해에 대한 정확한 자리매김이 왜 어정쩡한 상태로 놓여 있는 것인지 알수있을 것 같습니다.
부부가 나란히 누워 불교계를 바라보며 참 많은 말을 하고 싶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쩌면 근처에 묻혀있는 평생의 지우 오세창선생과 밤새 나라걱정을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내려오는 길에 소나기를 만났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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