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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16 17:02

왜곡된 슬픈현실 ---- 문명훤..

문명훤 선생의 자료를 찾아 보았지만...
찾기 어려웠습니다.
단지 백과사전과 몇몇의 블로그에서 다음과 같은 자료만을 찾아냈을 뿐입니다.

평남 평양(平壤)사람이다. 국권이 침탈되자 1914년 중국으로 망명하여 항일투쟁 방략을 모색하다가 병을 얻어 귀국하였다. 1919년 3.1 독립운동이 일어나자 맹산(孟山)에서 시위를 주동한 후 다시 상해로 건너갔다.
상해에서 영어전문학교를 수료하고 1920년 4월 14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내무부의 서기로 임명되었다가 동년 6월 24일 의원 사직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이곳에서 흥사단(興士團)에 가입하여 활동하는 한편 노스웨스턴대학을 졸업하였다.
1931년 초에 귀국하여 상업에 종사하면서 흥사단의 국내 조직체인 수양동우회(修養同友會)에 가입하여 사상을 고취하는 활동을 하다가 1937년 6월 회원 150여명과 함께 체포되었다. 일경의 고문을 견디며 4년여의 옥고를 치른 끝에 1941년 7월 21일 무죄로 석방되었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적을 인정하여 1968년에 대통령표창,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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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묘중에 가장 찾기 어려운 묘였습니다.
2년 전쯤 국군묘지로 이장을 하고 이곳엔 연보비만 서있었습니다.
이장한 묘라도 보고 싶어 근처를 샅샅히 뒤졌습니다.
분명 연보비 근처에 문명훤 선생묘 입구라고 적힌 조그만 석비를 발견했지만 묘는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 없었습니다.
묘쪽으로 올라가는 입구엔 조긍선 선생의 가족묘가 화려하게 위치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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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명단에 오른 조긍선선생의 화려한 가족묘입니다.


친일 논란이 있는 조긍선선생의 화려한 묘는 쉽게 찾을 수 있었는데 애국지사 문명훤 선생의 묘는 제대로 된 안내표지가 없어서인지 정말 힘들게 찾아야만 했습니다.
사실 제가 찾은 건 아니고 산속을 헤메고 있을 때 묘를 돌보는 분(벌초하는 분)중 한분이 친절하게 묘까지 안내해 주어 찾을 수 있었습니다.

저를 안내해 주었던 분은 다행히 문명훤 선생을 이장하는 작업을 했던 분이었습니다.
그분은 내게 이장에 관한 이야기와 문명훤선생의 가족이야기를 자세하게 들려주었습니다.
묘비에 새겨진 아들들은  미국에 살고 있고 그중  손자가 한국에서 거주하는데 그 손자의 부인 되는이가 이장을 했다고 합니다.
아직도 친아들들이 살아있건만 왜 손자 그것도 손자며느리가 이장을 했는지 많은 궁금증을 낳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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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묘들이 남쪽능선에 자리잡고 있지만 문명훤 선생의 묘는 북쪽능선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늘지고 어두운곳이라 찾기가 쉽지않았습니다.
지금은 저렇게 묘비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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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터주변엔 무궁화가 심어져 있었습니다.
아마 후손들이 심어놓았을 성싶습니다.
다른 후손들 처럼 묘를 화려하게 치장하지 못하는 처지을 무궁화로 대신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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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후 묘터있던 자리 한가운데도 무궁화를 심어놓았습니다.
가족의 바램으로 심었을 것 같습니다.
서둘러 이장작업을 하면서도 무궁화를 심는 후손들의 심정은 어떻했는지 궁금합니다..
묘주변을 장식했던 돌들이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습니다.
저 버려진 돌들처럼 문명훤선생도 우리 역사속에서 버려져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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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훤 선생의 기록은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후손의 잘못인지 정부 문서 보관의 잘못인지 아니면 관심이 없어서인지 알수는 없지만 그는 우리의 기억속에서 버려져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선생묘를 찾기위해 반드시 이긍선 선생의 묘옆을 지나가야 합니다.
아무런 관계가 없는 나도 그 옆을 지나 선생의 묘로 가다보면 답답함을 느끼게 됩니다.
왜곡된 역사와 비뚤어진 현실에 화를 참을수가 없는 것입니다.
선생의 후손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무척 궁금했습니다.
양지바른 곳에 화려하게 자리잡은 친일행위자의 묘를 지나 북쪽 응달진곳에 조그만 터를 잡고 근근이 독립운동가였음을 알리는 비석하나 껴안고 앉아있는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묘를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그래서 아들들은 이땅을 떠났는지 모르겠다 생각이 듭니다.
다시는 돌아오고 싶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해 보았습니다.
손부가 쫓겨가듯 이장을 서둘러하는 슬픈사연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어쩌면 그 후손들은 자랑스런 선조를 그냥 가슴속에 묻어버리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이장한 묘터 한 가운데 무궁화를 심어놓고 서둘러 유골을 수습하고 미처 뒷정리 조차 하지 않고 떠난
손부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씁쓸한 우리의 현실을 한탄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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